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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7-27 14:15
[국내작가] 자화상(강형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814  

작품명자화상(강형구) 
작가명강형구 
활동분야일러스트 
대표작‘자화상’, ‘유명인’, ‘불특정 다수’ 
:::::::::::::: 작품감상 ::::::::::::::슬라이드

    
:::::::::::::: 상세보기 ::::::::::::::



강 형 구 1954 ~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현재) 손기정 기념재단 재단 이사장



강형구가 그리는 얼굴은 ‘자화상’, ‘유명인’, ‘불특정 다수’로 나뉜다. 그는 오랜 공백을 딛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자화상 연작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화상들은 그의 얼굴 연작들을 정립해나가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을지 모른다. 자신의 얼굴에 담긴 삶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작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화상 이후로 강형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 영화배우, 예술가 등 많은 유명인들을 그렸다.



강형구는 정직한 구상화만이 오로지 각광받던 70년대에 미대에 진학하여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극 사실화의 대가인 척 클로스, 살바도르 달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영향을 받아 재학시절에도 인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사진을 묘사하는 작업에만 국한되는 것을 넘어서 그러한 명작들을 그대로 재현한 후 변형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예를 들어 밀레의 이삭줍기 작품을 큰 캔버스에 확대해서 그린 후 이삭을 돈으로 변형해서 그려서 결국 돈을 줍는 여인네를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작품과 함께 동전 주화를 작품의 오브제로 이용한 작품이라든지 평범하지 않은 설치작품 등을 병행하며 강형구는 점점 아카데믹한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이단아로 눈밖에 나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에도 화단에 등단하기가 평탄치 않았다. 소수의 유명한 공모전이 유일무이한 작가로의 등단 기회였던 그 시대에는 그의 시대를 앞선 작품들은 이러한 경로를 걷기에 무난한 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 그는 평범한 회사원, 갤러리 운영자를 거쳐 현재 그의 대형 얼굴 회화를 보여주기 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는 그가 화랑경영을 그만 둔 직후 1992년이다. 현재의 분당 작업실로 이주한 후 그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대중에게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꾸준히 작업만을 강행해왔다. 그러한 그의 끊임 없는 작업에 대한 열정이 지금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자화상 50여 점을 포함해 그가 제작한 작품은 20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마친 강형구는 첫 개인전 이후 매해 200호를 빼곡히 채운 인물 페인팅 수십 점을 제작하여 대형 전시장을 가득 매운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강형구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명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철저한 검증과정을 통해 예술세계에 등자했다. 하루 세 네 시간의 짧은 수면을 취하면서 몇 달씩 작업실에서 작품에만 몰두하는 그는 하루 스물네 시간이 짧다고 말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업에 몰두한 그이기에 지난 시간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노동집약적인 순수회화 작품만을 그것도 대형캔버스로만 작업하는 그는 작가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그의 작업실은 에어브러시에서 분사된 물감의 분진가루가 온 바닥과 가구, 선반, 그리고 환풍기까지 빼곡히 덮여있다.

이러한 그의 끈임 없는 노력이 낳은 것은 제작과정에서의 테크닉적 우월함이다. 얼굴을 묘사함에 있어 그는 에어스프레이를 이용해 피부의 매끄러움을 먼저 표현하고 그 물감이 마르기 전 면봉이나 붓을 사용해서 살갗의 미묘한 잔주름, 솜털, 땀구멍까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때 놀라운 것은 유화를 이용하면서도 기존 유화 자화상과 달리 강형구의 회화는 몇 번 덧칠한 수채화 같은 맑은 느낌을 주면서도 너무나도 정교한 주름이나 잔털까지 밀도 있는 묘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수십 번을 칠해서 캔버스의 밑 색이 위에 덧칠한 색감과 어우러져 깊은 색감을 내는 유화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수정이 용이하며 완성 시까지 여러 번 고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강형구는 이러한 유화의 수정의 용이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그가 습득한 일필휘지화법으로 큰 화폭을 거침없이 빠른 시간 안에 채운다.


그는 작업시간을 단축하려고 자신의 오른손을 몸과 함께 묶고 왼손만을 사용해 결국 양손잡이로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주머니 속에 항상 오목렌즈를 겸비해 작품제작 시 먼 거리에서 작품 감상을 함으로써 전체적인 묘사나 색감의 밸런스를 맞추었다. 그가 많은 작품을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에 걸친 그의 끈기 있는 노력의 결실이다. 강형구에게 흔히 50이 훨씬 넘은 나이의 작가에게 주어지는 ‘중견작가’라는 타이틀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갖는 작업의 추진력과 열정은 요즈음 젊은 작가들을 앞서간다. 그는 아직도 물감의 분진가루가 날리는 작업실에서 새로운 표현기법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다.


그는 화풍이 하나로 정립되어 변화가 없다는 것은 작가의 불행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는 얼굴이라는 큰 소재에 빠져 연구해왔지만 언제든지 다른 소재로서 변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에게 언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아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그는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그 작품 속의 인물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작품에서 손을 뗀다고 말했다. ‘응시’의 과정은 결국 그의 작품의 마지막 관람의 단계에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arariogallery


초상화와 혹은 시대의 캐리캐처



강형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을 자화상이 아니라 굳이 ‘자신의 초상화’라는 모순적인 용어로 일컫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타자화된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들은 평생을 거쳐서 그리는 자화상을 10여 년 간의 단 시간에 수십 점 그려낸다는 것,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주요한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연극배우처럼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고, 때로는 익살맞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등 다양한 표정으로 그림 속에 등장한다. 그 중에는 젊은 시절 렘브란트가 판화로 제작한 찡그린 표정의 자화상을 연상시키는 것이 있다. 이는 자신의 얼굴을 소재로 인간의 감정의 표현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화상은 전체에 있어서 일종의 연작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강형구’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가 특정한 순간에 표현하고 있는 ‘표정과 감정’이다. 이 ‘표정과 감정’은 결코 강형구만의 삶의 역사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에 인간 보편이 짓게 되는 표정과 감정인 것이다. 저 유명한 늙은 후의 자화상, 혹은 죽은 후의 자화상 역시도 강형구 자신의 삶의 역사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인 노화와 죽음에 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인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 혹은 편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90이 된 마릴린 몬로의 초상이 이 경우에 해당이 된다. 영원한 젊음과 섹시함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는 여배우의 적나라한 주름과 검버섯으로 뒤덮힌 얼굴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시각적인 새디즘처럼 보인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의 가장 근본은 묘사 대상에 대한 희구와 예찬이다. 이러한 희구와 예찬은 대상의 영원한 본질에 육박하려는 시도로 표현된다. 특히 구체적인 인물을 목표로 하는 초상화라는 장르에서는 구하는 이러한 경향이 인물의 이상화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뒷덜미나 어린 아이의 얼굴을 가득 뒤덮고 있는 주근깨는 인물을 있는 그 자체로 보라는 경고이다. 초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포즈나 태도(attitude)의 부제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런 적나라한 실체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본질적 규정에 대한 인식으로 나간다. 강형구가 인간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을 나타내는 주름 등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 본질의 최종 심급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은 시간의 지배하에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아름답고, 제 아무리 현명해도 신처럼 위대해질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인간이 시간의 지배를 받는 필멸(mortal)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간 묵살되었던 주름과 잡티의 표현은 바로 고전적 초상화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인간의 필멸성(mortality)에 대한 냉정하고 잔인한 언급이다. 그림 속 인물의 생로병사를, 결국은 모든 것을 부패시키고 사멸시키는 끔찍한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이 점이 바로 강형구가 현재적인 순간의 묘사에 중심을 둔 하이퍼리얼리즘을 넘어서는 지점이 된다.

한 사람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담고 있다는 신념으로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사람들의 얼굴에 몰두한다.
1달러짜리에 등장하는 링컨의 얼굴, 유명한 배우 소피아 로렌과 마리아 칼라스 같은 인물, 화가이면서도 허리우드의 스타 같았던 앤디 워홀을 그린다. 이 경우에도 작가는 각 인물의 전기적인 삶 전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채택이 된 이유는 그들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시대정신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컬러풀한 색채감과 상대적으로 매끄러운 피부 표면을 허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통시적인 시간의 흐름의 지배를 강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라는 말로 전통적인 작가의 개념을 조롱한 앤디 워홀은 싸늘하면서도 고독한 시선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지만, 진정으로는 고독했던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피아 로렌, 링컨과 앤디 워홀의 형상에서 보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인물 묘사들은 묘하게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 인물의 전면성보다 일면적인 성격이 강조된 이러한 류의 초상화에는 캐리캐처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캐리캐처는 초상화보다 더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게 마련이다. 이 인물들은 우리 시대에 매우 유명한 사람들 혹은 매우 유의미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시대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아이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인들은 모두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초상화라기보다 캐리캐처에 가깝게 묘사가 되는 것은 인물에 대한 우리 시대의 이해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국제 경매에 처음 진출한 강형구(53)의 '푸른색의 반고흐'(259×194㎝)는 추정가의 약 7배에 달하는 456만7500홍콩달러(5억4549만6000원)에 낙찰됐다. 그는 국제 경매 첫 진출부터 억대 작가로 데뷔했다.

“연극의 3대 요소에는 관객이 포함돼 있습니다.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작업을 마쳤을 때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감상이 있은 후에 진정한 완성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얼굴의 표피를 그렸지만 동일한 인물의 사진이나 여타의 이미지와는 분명히 다른 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성을 감상자와 공유하고 싶고 나와 비슷한 것을 느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술품은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품(品)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기능은 판매와 무관한 감상자와의 교감이고, 그것이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 목적 아니겠습니까.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전시장에서 더 많은 대중과 내 그림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품은 좋은 곳에 시집보내야 할 딸과 같아 여러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고 싶은 것이죠. 대중이 아닌 일부 고객만 상대하는 것은 돈 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창부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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